2004libido_m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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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0월은....
3년간 30만원씩 부은 적금의 만기일입니다.
그 3년동안 허리띠 조르고 졸라 적금을 부어 타게 되었지만
기분은 그리 좋지 않았습니다.
적금 만기일이 되었지만 제 생활비 통장은 0원에 가까워졌기 때문입니다.
신제품 개발비용 목적으로 부었던 적금인데 갈등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신제품 개발을 할것인가....아니면 생명유지용 생활비로 쓸것인가....
둘 다 모두 비관적이었습니다.
신제품을 만들어도 오디오 시장의 위축과 중고만 찾는
소비자들의 소비형태 때문에 신품판매는 기대하기 어렵고 ...
그렇게 되면 생활비는 없어지고 ... 다시 거지꼴로 몇 년을 더 살아야 할지 모르겠고
생활비로 쓰자니 1년 정도 버틸 수 있는 액수....
그래서 좋지 않은 생각을 했습니다.
적금탄 돈 모두 술 사먹고 생을 마감하기로.....

마감할 장소까지 물색해 두고 술집에서 술을 먹기 시작한지 일주일....
그러다 어떤 마담을 알게 되었는데 술집 손님들 주머니에서 돈 꺼내는데 완전 프로인
그런 인물이었습니다.
너무나도 집요하고 치밀한 그녀의 행동에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참 열심히 사는구나..."

저런 사람도 살아가려고 몸부림 치는데 아직 목숨 부지하고 있는 나는 뭐하는 걸까....
그래서 목숨 남은 기간 동안 하나만 더 세상에 탄생시키자 생각했고
그것이 레인보우2 인티앰프였습니다.



내가 죽어도 이 작품은 세상에 남아 사람들이 나를 추억해 줄 것이다....
이런 생각으로 초인적 마인드로 설계를 시작했습니다.
물에 빠졌을 때 그 물이 아무리 깊어도 발이 땅에 닿으면 살 수 있다고 합니다.
딱 그런 기분이었고 너무나도 편하고 풍요로운 마음으로 제품을 설계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새로운 아이디어들이 번뜩였고 이제 죽어도 좋은 정도로 만족도 높은 제품이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적금에서 그동안 마신 술값 빼고 레인보우2에 쓰인 비용과 판매비용을 비교하니
1년전 환경과 나아진 것이 없더군요

이제 레인보우2도 탄생했고 1년여 지나 이제 미련없이 정말 세상을 등질 때가 왔습니다.

2011년 11월....
하지만 하늘에서 그러는 것 같더군요...
"넌 아직 갈 때가 아니라고....."

왜냐하면 그때 기적같이 우렁각시가 제 앞에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레인보우2 작업을 마치고 신청하신 분들께 모두 보내드렸습니다.
마음이 한편으론 홀가분 하면서도 무거워졌습니다.
적금 받은 돈
술먹고 남은 것을 모두 레인보우2 제작비에 쏟아부었습니다.
적자난 작업이라고 우스개 소리로 이야기 했습니다만 정말 통장엔
잔고가 거의 없었는데 어떻게들 아셨는지 저의 사정을 알고 레인보우2를 신청해 주셨던
분들과 지인들이 모여 십시일반 성의것 생활비를 보내주셨습니다.

그때가 2011년 11월 이었습니다.

신한 작지만 님
서정진 님
신한리비도화이팅 님
METAL 님
이준승 님
이경균 님
정석원 님
김권섭 님
김남갑 님
김정완 님
지농 황갑힘내세요 님
여명수 님
정의탁 님
엄태문 님
그리고 편지 봉투에 무기명으로 보내주신 분들까지.....

고맙지만 이 또한 큰 부담으로 다가왔습니다.
이제 편하게 가려는데 제가 뭐 잘한것 있다고 이런 부담을 주시는지요....
하지만 저의 마음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지인들께 마지막 안부인사를 하려 전화번호를 찾았습니다.
그런데 한국통신에서 글씨 크게 보이는 핸드폰을 공짜로 준다하여 핸드폰을 바꿨던 터라
전화번호를 찾으려 예전 핸드폰을 찾아 꺼냈습니다.
방전되 있더군요...
충전기는 어디로 갔는지.....
이틀 걸렸습니다. 충전기 찾는데....
그리고 충전을 하고 전화번호를 찾았습니다.
그런데 왠 여자 이름이 보이더군요.. 그런데 누군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평상시 같으면 그냥 지나쳤을텐데 너무 외롭고 힘들고 이제 곧 갈텐데 뭔 걱정이냐 하는
마음으로 전화를 걸어봤습니다.

"여보세요"

그런데 그녀 역시 제가 누군지 모르고 있었습니다.
참, 이게 무슨 짓거린지....
그런데 그녀는 전화를 끊지 않고 어떻게 전화번호를 알았느냐....부터 해서
스무고개 방식으로 서로의 기억을 찾기 시작했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서로의 기억을 조금씩 찾았습니다.

3년 전에 딱 한 번 봤는데 솔직히 저는 얼굴도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동네 술친구로 가끔 만나는 아줌마들이 있었는데 어느날 아줌마 한 분이 아는 동생을 데려왔고
저는 별 관심없이 술 먹다 헤어졌는데 아마 술김에 전화번호를 교환했었던 것 같았습니다.
제가 그녀에게 곰돌이 인형까지 사줬다는데 기억이 안난다고 솔직히 이야기 하지 못했습니다.
그냥

"아...그랬나요....반갑네요..."

뻘쭘......

그 다음날 저녁식사 약속을 했습니다.
그리고 만나서 얼굴을 봤는데 처음 보는 여자입니다.
기억이 안납니다.
그런데 그녀는 저를 만난 후에 저에게 전화를 여러번 했다고 합니다.
제가 올빼미 생활을 한던터라 전화를 못받은 것 같은데 그녀도 전화통화가 되지 않자
번호를 지웠다고 합니다.
그러다 3년이 지나 제 전화를 받았고 그녀는 저를 곰돌이 오빠라고 기억하고 있었으며
제가 3년전에 사준 곰돌이 인형을 아직까지 잘때 껴안고 잔다고 합니다.
식사를 마치자 그녀가 저희 집에 놀러가겠다고 합니다.
여기 오셨던 분은 아시겠지만 이곳은 여자를 초대할 수 있는 분위기는 절대 아닙니다.
그런데 그녀는 앞뒤 가리지 않고 저를 끌고 집이 어디냐 하며 저의 집에 들어서는데.....




막상 우리집으로 가고 싶다는 그녀에게 선뜻 집구경 해주기가 창피했습니다.
오디오 하는 남자들만 왔다갔다 하는 곳이고 보통 남자들은 지저분한 것...
더군다나 혼자사는 사람이니 왠만하면 이해해 주시지요...
이런 곳을 여자에게 보여주기란 어려운일이고 그런 적도 없었습니다.
예전에 레인보우2 작업할 때 일을 도와주시던 알바 아줌마도
왠만하면 지나칠 것을 도저히 못봐주겠다며 간단히나마 청소를 해주신적이 있는데....
그래서 그랬죠...

집안 정리가 좀 되면 초대하겠노라고....

그리고 약 일주일 정도 청소를 했습니다.
청소를 하고 있자니 별별 생각이 다 들더군요...
이게 뭔 짓인지....

일주일 후....
그녀가 왔습니다.

그리고는 "오빠 이거 이렇게 하면 어떨까 ....저렇게 하면 어떨가" 하며
다시 청소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일이 점점 커지는 느낌 입니다.
기껏 청소해놨더니 이미 좁은 거실(주방)은 쓰레기 더미로 가득 찼습니다.
여자가 보는 눈은 남자가 보는 것과 다른것 같았고 이래서 여자가 필요한 것인가 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대충 치우고 나니 역시 더 좋아졌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대충 치우고 하는 말...

"오빠 내일은 어거 이렇게 하고 저거 저렇게 하자......"

이러는 겁니다.
그리고 더 이상한 일은 자기 집에 안가고 여기에서 자겠답니다.

제가 지금까지 살면서 여자들한테 당한적이 몇번 있어 여자의 심리를 아는데
이건 또 뭐지? 하는 생각에 머리가 복잡해졌습니다.
직장을 다니는 그녀는 퇴근 후 다시 우리집에 와서 갖은 허드렛일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루는 옷가방을 꺼내어 입을만한 옷, 버리는 옷을 구분하고 입을만항 옷을 빨래하는데
그 추운 12월에 손빨래로 옷을 다 빠는데 보기 미안하기도 하고 안스럽기도 하고 해서...
결국 며칠 후에 조그만 세탁기를 하나 샀습니다.
1년 365일 단벌로 사는 저로써는 평생 세탁기의 존재에 대해 남에 나라의 물건이다 라고
생각했는데 머리털 나고 처음 세탁기를 샀습니다.
그렇게 집 정리를 하는데 한달 넘게 걸렸고 지금도 조금씩 뭔가 자꾸 하려는데 불안불안 합니다.

대충 정리가 된 것을 떠나 거의 새집이 되었고(도배까지...ㅠㅠ)그 후에 그녀는 뭔가 자꾸 들고옵니다.
옷가지 부터 그릇 등의 생활용품을 들고 오는데 그 중에 곰인형이 하나 있었는데
예전에 제가 사줬던 인형이라고 합니다.
너무 오래되어서 모가지에 히마리 하나 없고 그냥 난 곰인형이요 라고만 보이는 형태 입니다.

그래서 물어봤지요...너 어느별에서 왔니?...가 아니고 너희 집은 어디니?...

그러자 그녀는 서울역 광장이라 하며 추울때는 서울역 안에서 잔다고 합니다.

"노숙자냐?"

하면

"응"

합니다.
농담인줄 알면서도 몇 달이 지나도록 말을 해주지 않아 답답했는데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전세집이 하나 있었고 지금은 아는 후배한테 월세로 돌려
월세를 받고 있다고 합니다.
저 보다 더 부자더군요....
그런데 이런 여자가 왜...왜 자살할 마음까지 먹은 저의 앞에 나타난 것일까?.....
뭘 믿고......
그녀와 같이 지낸 몇 개월 동안은 어안이 벙벙 할 정도로 머리가 복잡했고 언젠간
떠날 사람이다 생각하며 정을 주지 않으려 했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싸우기도 많이 싸웠고 제가 쫒아내려 한 적도 있었지요...
이런 상황은 아무리 봐도 정상적인 패턴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우리 고양이들은 그녀를 매우 싫어했지만 그녀는 친해지길 바랐습니다.
하루는 복동이 앞에 가까이 다가가서 인사를 하려는데 확 할퀴는 바람에 ....

"오빠 나 다쳤어..."

해서 보니 눈동자 바로 옆에 스크래치가 났습니다.
잘못하면 큰일날 뻔 했지요....
그런데도 고양이들 응가 모래 청소까지 다 해주고 친해지고 싶은 마음이 보이더군요...
보통 딴 생각이 있었다면 이런 정성을 보이기가 힘들지요...
그리고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 제가 자고있던 말던 아침과 점심 먹을 찌개나 국, 반찬을
해놓고 출근합니다.
그리고 하루에 꼭 두 번 전화를 합니다.
점심 먹었는지 체크, 그리고 퇴근 한다는 신고전화를....

이쁘냐고요?
일요일 진짜사나이 프로를 볼 때마다 거기에 나오는 조교를 굉장이 부러워 합니다.

"내가 여군 가서 저거 했으면 딱인데..."

그럼 제가 그러지요.

"그러게 말이야...넌 남자로 태어났으면 딱 장군감인데..."

덩치가 좀 있지만 하는짓은 천상 여자...그런 여자 입니다.
제 나이 이제 곧 50을 바라보는데 이 나이에 신혼이라니.....
이 나이에 신혼이라니.....
딱 2년 되었네요....
더 재미있는 일들도 많았는데 더 이야기 해봤자 늦게배운 도둑질 날새는줄 모른다 하시는 분들의
성화 있을까 하여 이쯤에서 줄입니다.

참, 한마디만 더....

저는 그녀에게 바라는 것이 없는데 주변에서는 약간 삐딱하게 보는 사람도 있습니다.
U-B / B-U 컨버터 처음 나왔을 때 한 후배왈...

형수님이 도와주셨나 보지요?.....

이런말 제일 싫어합니다.
자존심 하나 빼면 시체인 저에게 그런 무례한 말을 하다니....

그리고 혹시 이곳에 오실때 우렁각시를 보더라도 가볍게 눈인사 정도만 해주세요...
낮을 가리는 편이라 그런데 그런 여자가 어떻게 저에게는 그렇게 저돌적이었는지 참 의문입니다.




Epilogue

어느덧 우렁각시가 들어온지 2년 반 정도가 되었습니다.
그동안 꿈도 꾸지 못했던 신제품인 M-50 파워앰프도 만들었고
제 인생의 많은 변화가 생겼습니다. 물론 긍정적인 쪽으로...
하지만 그동안 다툼이 없었던 것도 아닙니다.
처음엔 제가 이기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결국 매번 집니다.
그래서 요즘은 져주는 것이 더 마음이 편해지는데 그러다 보니
머리 위까지 올라오는 경우도 종종 발생합니다.

최근 며칠은 술을 마시고 외박하는 횟수가 늘더군요.

몇 번 그러지 말라고 주의를 줬는데도 불구하고 고쳐지지 않자

"아...여기까진가 보다.."

하고 문자로 이별을 선언했습니다.

그리고 새벽 5시쯤 되었나..
술취한 모습으로 들어왔는데 제가 일부러 방문을 잠궈놨습니다.
그 키는 각시에게도 없는 것이었지요
문을 열려고 아둥대다 다시 밖으로 나갔다 다시 들어와 또 문을 열어보려 아둥대는 모습이 실루엣으로 보이는데 참 그것도 못할짓이더군요. 미운정이 뭔지....
그래서 문을 열어주니 옷도 갈아입지 않고 잠을 자더군요.
제가 보낸 문자에 좀 놀랐던 것 같습니다.
다음날 다시는 안그러겠다 맹세를 받았는데 뭐 사람성격 어디 가겠습니까?
걱정되는 것은 사고라도 나지 않을까 해서인데 그 맘을 몰라주는 것 같아
야속하기도 하고요...
둘이 만나고, 그것도 늦게 만나 같이 산다는 것이 참 쉬운 일만은 아니지만
그래도 다들 이렇게 살지 않겠나 싶어 위로를 받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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